이 영화를 봤을 무렵, 난 미대 편입에 실패하고 동네 PC방 알바를 하며 다시
미대 편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일 오는 단골 손님과 롤을 하러 오는 친구,
한쪽 구석탱이에 앉아 항상 몰래 포르노를 보는 진상, 술에 취해 시끄럽게
떠드는 20살 애새끼들. 그리고 카운터에 앉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는 나.
PC방에 오는 모든 손님은 아니더라도 맨날 와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며 별생각
없어 보이는 손님들을 보며 속으로는 무시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왜
자기개발을 안 하지?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언제까지 별다른 목표 없이 저렇게
게임만 하고 살지? 그리고 난 언제까지 저런 손님들을 상대하며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속으로는 한심한 사람이라 무시했지만, 그런 손님들과 같은 공간에서 응대하며
돈을 버는 게 바로 나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든다. 저런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무시하면서, 그럼 그 사람들이 주는 돈으로 월급을 받는
너는 뭔데? 저런 사람들과 나는 다른가? 무엇이? 사실 나도 저런 부류의
사람들과 같은 사람은 아닐까?
그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면 나 자신도 그 사람들과 동화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의심하고 질문을 던진다. 매일 똑같은 사람, 똑같은
일, 똑같은 환경. 새로운 도전도, 발전도 없이 매일 똑같이 돌아가며 인생에
목표도, 의미도, 즐거움도 찾지 못하고 그렇게 속이 텅 빈 채로 친구들을 만나
별로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에 로봇 같은 표정을 지어주고, 죽은 눈으로
좀비처럼 멍하게 살아가는. 그런 인간들과 결국 다를 바 없는가? 애초에 내가
왜 미대를 가려고 했었지? 그런 삶이 싫어서 자퇴하고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결국 난 내 이상에 조금도 도달하지 못하고 이 거지 같은 촌구석에
갇혀 외롭고 공허하게 살다 죽는 건가? 사람은 이렇게 미쳐간다.
이런 상태에서 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바라보는 이상은 크고 타인에게
인정받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은 주인공 트레비스. 하지만 현실은 매춘부 낀
돈만 많은 구찌 돼지들을 태우는 심야 택시 기사, 맨날 식당에 모여 저급한
성적 농담과 개소리를 떠들며 자신이 뭐라도 된 사람인 마냥 잘난 체하는 기사
동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트레비스가 참을 수 없는 건, 자신은 저런 한심한
놈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자신도 저런 환경과 무리에 속한
별다를 바 없는 한심한 인간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트레비스은 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대통령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애꿎은 매춘부
포주들을 찾아가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 죽여버린다. 그리고 트레비스는
위험에서 매춘부를 구한 영웅으로 신문에 나게 되고, 엔딩에서 우연히 자신의
택시에 탄 좋아했던 여자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음을 느낀다.
유튜브나 인스타에 빌런이라고 올라오는 영상들의 댓글을 보면 왜 저러냐는 둥,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둥, 비난들이 쏟아진다.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빌런들이 많으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근데 정말 그걸로 끝인가? 정말로 그
사람은 미친 걸까? 아니, 오히려 미치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는가? 이런
빌런들과 영화 속 주인공이 제정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이해하고 동질감을 느낀다. 이걸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그저 미친 사람으로만
보일 뿐이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공허하게 떠돌아다니는 그 느낌.
알바생, 취준생, 회사원. 활기를 잃고 죽은 눈으로 로봇 같은 표정으로 손님과
상사를 상대하는 수많은 사람들.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게 되는 표정들을 보면
좀비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돈? 인정? 희망?
친구? 과연 무엇이 이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었을까?
영화 속 트레비스는 마지막에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의 눈빛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에서 인정 욕구가 채워졌을까? 이제 만족스러울까? 영화에서는
주인공 한 명만이 총으로, 그것도 매춘부 포주들을 죽여서 운이 좋게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회적, 내면적 불만들을 해소하지 못한 수많은
시한폭탄들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터질지 모른다. 이런 것들이 길거리의
묻지마 폭행으로, 지하철 방화 테러로, 사이버 렉카로 나타난다. 조커가 악당이
된 게 정말 조커 혼자만의 문제였을까? 결국 사회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사회 시스템이 근본적인 원인인 경우가 많다. 택시 드라이버의 배경도 베트남
전쟁에서 퇴역한 군인이 트레비스인 것처럼. 그리고 람보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미치지 않으려 애쓰거나, 결국
미치거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2026년 2월 17일